2개월 전
순례자들 0화
도시와 황제
2015년 12월 포스타입에서 작성하였던 글입니다.
발소리가 철창 앞에 다다르자 죄수가 입을 열었다. "항복하시오." 황제가 답했다. "내가 원하던 대답이 아니군." 은촛대에 불이 붙었다. 빛 한 줌 들지 않는 지하 감옥에 오랜 시간 갇혀 있었던 죄수는 한 번 꿈틀거리더니, 은촛대의 밝은 빛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. 철창 앞에 선 황제가 은촛대로 그를 비추었다. 길고 덥수룩한 갈색 머리칼과 수염에 그림자가 진 죄수는 얼굴을 보이지 않았고, 족쇄에 묶인 팔다리는 시체처럼 초췌하고 창백했다. 갑옷을 벗겨낼 때 찢어진 적십자 휘장은 넝마가 된 채 죄수의 이불로 전락했다. 젊은 황제는 중년의 죄수 앞에서 두 팔을 펼쳐 보석으로 치장된 사치스러운 자주색 예복을 과시했다. "보라, 거짓 순례자여! 도시는 전쟁의 준비를 마쳤다. 비록 어리석은 전 황제들의 실책으로 탑과 사……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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